인연(因緣)

어머니의 갑작스런 병사는 나에게 심한 “배신”이라고 하고 다가왔다.

생로병사는 이치를 인정하면서도 우리 어머니만은 예외여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아집은 무슨 이유였을까.당신의 목숨보다 더 사랑한 이 막내딸을 세상에 혼자 남겨두고 어머니가 그렇게 빨리 세상을 외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좀처럼 믿을 수 없었다.

당신이 나에게 그렇게 해도 되느냐,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묻고 싶다 정도였다.

생사를 결정할 뿐 권한이 인간에게 주어지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나는 어머니의 죽음이 작위적이고 철저한 복수극의 결말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충분하지 않나!
!
!
지금까지 나의 불효에 대한 어머니의 완벽으로 처절한 훈계 같았다.

어머니의 죽음 자체보다 그 죽음에서 오는 상실감에 나는 화를 냈다.

그만큼 나는 에고(ego)였다.

이어 평생을 함께 한다고 믿고 있던 사람을 보내고 아이를 대신했던 반려견까지 잃었다.

지금의 나는 흙 한줌, 풀 한포기도 나지 않고 있는 한 별에 혼자 오는 느낌이다.

내가 인연(인연)을 맺고 살아온 지구라는 세계로 사정없이 꺾고 있다.

그리운 사람들의 숨결이 들리지만 그들은 모두 자신의 가는 길이 바쁘게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 걸음으로 떠났다.

이런 내가 보기에 안쓰러운지 누군가 반려동물을 입양하길 권한다.

워낙 동물을 좋아하는 나이지만 내키지가 않아.손이 많이 가고 경제적 부담이 따르는 등의 물리적 이유만은 아니다.

다시는 어떤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아서도 아니다.

새로운 인연이 두렵기 때문이다.

반백을 넘어선 지금까지 작고 큰, 여러 인연들이 내게 찾아왔다.

그 인연 속에서 스스로 밀어낸 적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은 상대방이 내 손을 놓았다.

그것도 되게 냉정한 뒷모습으로.사별과 이별은 그 여운이 전혀 다르지만 이별이라는 점에서 같은 무게와 아픔을 동반했다.

사별이라고 해서 금방 잊혀지는 것도 아니고, 이별이라고 해서 그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는다.

인간이 망각의 존재라고 하지만 그 상처를 가슴 깊이 묻어두고 들여다보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인연을 맺는 게 두렵다.

아니, 혹시 인연의 끝을 두려워할지도 모른다.

자아 본능이다.

인연이 준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한 발판으로 새로운 인연을 끌어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 뚜렷한 결론에도 불구하고… 그렇긴 난 유기 동물 보호 센터를 찾는 수고를 마다하고 동물 인터넷 카페에 입양 문의 글을 올리다.

어리석음을 아는 이 행위는 또 얼마나 어리석고 있고, 가련한 일인가.인연의 뒤안길과 현재의 고독, 이 두개의 무게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인간. 고독을 자유롭게 위장하고 흔연히 살아가기엔 너무 외롭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기 위해서는 떨고 사색이 된 딱한 노인.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라고 해도 결국은 “햇볕 아래서 모든 것이 비생산적”이라고 쓰인 성서 절로 고개를 크게 끄덕이다, 자신의 말에 성 이론에 한숨을 크게 토한다.

사람이 평생 무엇을 쫓는다고 해서 결국 무엇을 이루었다는 것인지 그 무엇에도 이면이 있으리니 결국 현재의 감정에 충실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위안을 스스로에게 주고 보자.그래도 인연은 소중하다.

끝이 무서워서 출발을 포기하기는 “함께”라는 순간이 더할 나위 없기 때문이다.

부자 간의 인연이 통한의 후회를 남기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인연이 심한 불면의 밤을 만들었다고 해도 제 수첩에 “아니, 한번도 못했어”라는 글을 잘게 써도 인연이라 중요하다.

그 아픔이 비록 내 숨이 다하는 날까지 나를 괴롭히면서도 현란했던 순간의 기쁨도 나의 것이니까.인생은 전쟁터가 있지만 태어난 것을 나무라지 않는다.

그 인생이 너무나 미비로 짧아도, 이 또한 인연입니다.

광대한 우주 세계, 불가측 한 천체 속에서 이 지구와 인연을 맺은 내 삶.소심한 시간 속에서 찰나에 불과한 이 인연을 허무하게 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온 때문, 기쁨을 맛 보며 내가 살아온 때문, 사랑도 나누고 내가 살아 보니 미련 없이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이 안도이다.

하루에 몇번이나 버려지는 동물의 1마리와 새로운 인연을 맺으려 하고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다.